[예결신문 신세린 기자] 한·미 관세 협상으로 완성차 관세가 15%로 내려가자 자동차 업종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배터리·전기차 소재 산업의 표정은 다르다. 관세는 이제 주변 변수일 뿐, 진짜 게임은 미국이 설계한 보조금 규칙, 특히 '신규 청정차 세액공제(미국 세법 30D조항)'와 '우려 외국기업(FEOC) 규정'을 통과하느냐에 달려서다.
17일 미 에너지부와 재무부 공문에 따르면, 청정차 세액공제(30D)는 최대 7500달러지만 절반은 배터리 부품, 나머지 절반은 핵심 광물 요건을 충족해야 받을 수 있다. 작년부터는 '배터리 부품에 FEOC가 제조한 제품이 포함되면 안 되고', 올해부터는 '핵심 광물이 FEOC에서 채굴·정제·재활용된 경우도 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문구가 명시됐다.
미국 기후 및 에너지 솔루션 센터(C2ES)는 9월 "30D 세액공제를 받으려면 안보에 위협이 되는 국가의 부품·광물을 배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짚었다.

■ 'ESS로 피신'한 SK온…조지아 공장 라인 전환
이 규범 체제 안에서 한국 기업이 선택한 첫 번째 축은 북미 현지화와 시장 다변화다. 9월 3일자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SK온은 미국 플래티론 에너지와 2026~30년 최대 7.2GWh 규모의 LFP(인산철) ESS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보도는 "SK온이 미국 에너지 저장 시장에 본격 진입하는 첫 대형 계약"이라며 "2026년 하반기부터 공급을 시작하고 조지아 공장의 일부 전기차 배터리 라인을 ESS 생산용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SK온은 기존에 현대차·기아·포드 등 완성차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유지해 왔지만, 전기차 수요 둔화와 관세·보조금 불확실성이 겹치자 ESS를 '제2의 주력 축'으로 키우는 방향으로 선회한 셈이다. 이 계약은 FEOC 규정과 무관하게 미국 내 생산·공급망을 명확히 하면서 IRA 보조금과도 정합성을 맞추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 퀘벡의 양극재, 북미 내에서 '완성'
양극재와 전기차 소재에서는 포스코퓨처엠과 GM의 합작사 'Ultium CAM'이 핵심 축이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포스코퓨처엠은 캐나다 퀘벡 양극재 공장 가동 시점을 내년 10월로 잡고, 인력 교육과 설비 점검을 진행 중이다.
앞서 GM은 합작사 발표에서 "울티엄 CAM은 연간 약 36만 대의 전기차 생산을 뒷받침할 양극재를 공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캐나다는 미국과 FTA를 맺은 국가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양극재는 30D '북미 또는 FTA 생산' 요건을 충족하는 광물·부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선 국내에서 만들어 미국으로 보내던 예전 모델을 버리고 광물–전구체–양극재–셀을 북미 안에서 완성하는 전략으로 완전히 갈아타는 셈이다.
■ LFP·ESS·하이브리드…제품 믹스도 바뀐다
제품 전략도 재편되고 있다. 전기차 판매 둔화와 고금리가 겹치면서 고가 NCM 위주 EV만 바라보는 포트폴리오는 위험해졌다. 이에 따라 LFP·LMFP 같은 저원가 계열은 ESS·보급형 EV에, 고니켈 NCM·NCMA는 프리미엄 EV와 고출력 모델에 배치하는 이원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이 2027~30년 테슬라에 43억 달러 규모 LFP 배터리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으며 상당 부분이 미국 내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SK온의 플래티론 계약과 함께 보면 한국 배터리사들이 'EV 단일 의존'에서 벗어나 ESS·하이브리드·상업용 영역으로 리스크를 분산하는 흐름이 분명해진다.

■ 진짜 싸움은 '문서'와 '데이터'
그러나 공장을 짓고 계약을 따냈다고 끝이 아니다. 30D 최종 규정을 담은 미 국세철에 따르면 세액공제를 신청하려는 제조사는 어느 공장에서 어떤 부품과 광물이 사용됐는지를 스스로 입증해야 하고 국세청이 사후 검증을 실시할 수 있도록 모든 자료를 보관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급망 입증에 대해 국제 로펌들은 '양극재가 어떤 국가의 광물에서 출발해 어느 정제소·합작사·셀 공장을 거쳤는지'를 포괄하는 수준이다. C2ES는 "중간 단계 어딘가에서 FEOC로 분류된 업체가 끼어 있으면 완성차가 보조금 전액을 날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제 배터리 업체에게 '라인 증설'보다 더 어려운 일은 모든 공정과 소재를 문서와 데이터로 추적·증명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짜는 "한국 기업들은 이미 조지아·켄터키·퀘벡 공장과 울티엄 CAM 합작사를 통해 북미 현지화의 첫 단추를 끼웠다"면서도 "앞으로 2~3년은 북미 안에서 완전 추적 가능한 공급망을 깔 수 있는지, EV와 ESS를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로 수요·가격 사이클을 관리할 수 있는지, 법무·세무·공급망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컴플라이언스 조직을 갖출 수 있는지 등이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 간단 요약
• 관세는 낮아졌지만, 배터리 산업의 승부처는 30D·FEOC 보조금 규범으로 이동
• SK온 ESS 대형 계약, 포스코퓨처엠–GM 퀘벡 공장 등은 북미에서 공급망 고리를 완성하려는 시도
• 앞으로 2~3년 ESS·EV 포트폴리오 재편 + 공급망 증빙 시스템을 갖춘 기업만이 수혜
■ 출처
• 미국 IRS·에너지부 30D·FEOC 관련 안내
• C2ES '30D·45X 세액공제 해설'
• 로이터 'SK온, 플랫아이언 에너지 개발과 1GWh 규모 ESS 공급 계약 체결' 보도
• 포스코 뉴스룸
• 월스트리트저널, 'LG에너지 LFP·테슬라 ESS 계약'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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