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적 '과소 추계' 또는 '묻지마 예산'⸱⸱⸱의회 감시 기능 작동했나
[예결신문=백도현 기자] 2024년은 대한민국 지방재정 역사상 유례없는 '한파'가 몰아친 해였다. 정부의 국세 수입 감소로 전국 지자체는 '세수 펑크' 사태를 맞았고 많은 지자체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하지만 서울 강남구는 예외였다.
2일 본지가 파악한 '2024회계연도 강남구 결산서' 및 재정공시 자료에 따르면, 강남구 금고에는 쓰고 남은 돈, 즉 순세계잉여금이 잔뜩 쌓여 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집행률 0%대 사업들과 수십억원의 혈세가 잠자는 '행정 사각지대'가 자리했다.
■ 순세계잉여금 2348억⸱⸱⸱'엄살'인가 '무능'인가
강남구청이 공시한 2024회계연도 결산 결과에 따르면, 구의 순세계잉여금은 2348억원에 달했다. 이는 일반회계에서 발생한 2102억원과 특별회계 및 기금 등에서 발생한 잉여금을 합친 수치다.
이는 서울시 내 재정자립도가 낮은 다른 자치구들의 1년 치 전체 지방세 수입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 잠들어 있다는 의미다. 강남구의 재정자립도는 50.4%로, 동종 지자체 유형 평균(24.3%)을 두 배 이상 상회한다.
흥미로운 점은 강남구의 이중적 태도다. 구는 통합재정수지 상으로는 -244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이는 회계상의 수치일 뿐, 실제 가용 재원인 순세계잉여금은 2000억원을 넘겼다.
이는 애초에 세입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잡고(과소 추계), 세출은 방만하게 편성한 뒤 집행하지 않는 '재정 알박기' 관행이 고착화됐음을 시사한다. 주민을 위해 쓰여야 할 기회비용이 공무원들의 '보신주의' 행정 속에 사라진 셈이다.
■ 130억 '희망 고문'⸱⸱⸱힐링센터는 언제쯤?
주민자치과 소관의 핵심 치적 사업인 '강남힐링센터 확충' 사업은 '돈맥경화'의 전형이다. 이 사업의 예산현액은 133억6118만원이지만 작년 한 해 집행된 금액은 50억5000만원(37.8%)에 그쳤다. 83억787만원이 명시이월로 처리돼 내년으로 넘어갔다.
공사 지연, 설계 변경 등 이유가 있겠지만 전체 예산의 60% 이상이 금고에서 잠자고 있다는 것은 사업 관리에 심각한 구멍이 뚫렸다는 증거다. 83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묶여 있는 동안, 주민들이 누렸어야 할 문화·복지 서비스의 혜택은 사라졌다.
■ 도곡1경로당 신축 18억 이월⸱⸱⸱'묻지마 추계'?
어르신복지과의 '도곡1경로당 신축' 사업은 예산 추계가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이 사업의 예산은 49억6846만원이었다.
공사가 지연돼 13억원을 이월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문제는 18억여원에 달하는 '불용액(집행잔액)'이다. 이월도 아니고, 그냥 '안 쓰고 남은 돈'이다. 전체 예산의 36%가 불용 처리되었다는 것은 애초에 소요 예산을 턱없이 부풀려 잡았거나 사업 계획이 도중에 대폭 축소됐다는 뜻이다. 이는 '절약'이 아니라 '무능 재정'에 가깝다.
결국 해당 시설은 '도곡1노인복지관' 이름으로 지난달 개관, 앞서 구청 측이 밝힌 올 3월 개관목표에서 8개월이나 늦어졌다.
■ '무인민원발급기' 집행률 0.9%
특히 민원여권과 소관의 '무인민원발급기 운영' 사업은 행정의 난맥상을 보여준다.
강남구는 주민 편의를 증진하겠다며 무인민원발급기 확충 예산으로 4억2794만원을 편성받았다. 하지만 실제 집행된 금액은 396만원에 불과했다. 집행률 0.9%다. 나머지 예산인 3억9894만원은 고스란히 다음 연도로 이월됐다.
1년 간 기종 선정을 고민한 건지, 발주 자체를 잊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예산서에 버젓이 올려놓고 집행은 하지 않는 이런 행태는 명백한 '행정 마비'다.
구청 관계자는 경로당 사업에 대해 "사업을 포기한 게 아니라 공사가 늦어진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명시이월 13억원, 불용액 18억원을 확정했다는 건 '공사비 낙찰차액(입찰로 깎인 돈)'이나 '과다 편성된 예산'임을 사실상 시인하는 셈이다.
또 구청 측은 강남힐링센터 사업 집행률과 무인민원발급기 운영에 관해서는 각각 별도의 구체적 사유 등을 밝히지 않은 채 "구매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출처
2024회계연도 강남구 결산서 첨부서류(이월 명세서 및 결산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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