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결신문=백도현 기자] 중국발 공급 과잉이 정점을 지나 서서히 정상화 국면에 들어가고 있지만, 미국의 고율 관세와 탈탄소 규제가 한국 철강업계에 새로운 부담을 얹고 있다.
최근 글로벌 철강업계는 중국 수요 둔화로 남는 물량이 수출로 쏟아져 나오고 여기에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고율 관세,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미국 청정경쟁법(CCA) 등이 겹치면서 철강은 더 이상 단순한 경기민감 업종이 아니라 지정학·기후·통상이 뒤엉킨 전략 산업이 됐다.
■ 중국, 여전히 세계 조강의 절반⸱⸱⸱수요는 줄고 수출은 늘고
6일 세계철강협회(WSA)와 한국철강협회 자료에 따르면 작년 글로벌 조강 생산량은 약 18억8000만 톤으로 전년 대비 0.7% 감소했다. 같은 해 중국 조강 생산량은 약 10억1000만 톤으로 1.7% 줄었지만, 여전히 전 세계 생산의 약 53%를 차지했다. 중국 내 철강 수요는 8억7000만 톤 수준으로 전년 대비 3% 감소한 반면, 철강재 수출은 약 1억1000만 톤으로 늘었다.
중국 내 건설·부동산 경기 둔화가 수요를 짓누르자, 남는 물량이 동아시아 인근 시장으로 밀려나오고 있고 그 직격탄이 한국과 일본으로 향했다. 작년 한국의 중국산 철강재 수입은 880만 톤으로 전년보다 1% 증가한 반면, 일본산 수입은 473만 톤으로 16% 감소했다. 값싼 중국산이 일본산을 상당 부분 대체한 것이다.
철강 수요의 절반 이상(약 52%)은 인프라·건설에서 발생한다. 건설 중장비 16%, 자동차 12%, 금속제품 10% 등도 주요 수요처다. 중국 역시 건설·부동산 비중이 약 50% 수준으로 추정돼 중국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둔화는 곧 글로벌 철강 수요 하락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과잉 설비를 줄이기 위해 그동안 여러 차례 구조조정을 추진해 왔다. 낙후된 소규모 제철소 폐쇄, 유도전기로 전면 퇴출, 14차 5개년 계획에서의 감산 유도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상위 5개 철강사의 시장점유율이 30%도 안 되는 분산 구조라, 정부 의지만으로 공급이 급격히 줄어들기 어렵다는 한계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장기적으로는 감산·재편 압력이 누적되면서 공급 축소 방향으로 서서히 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 각국 관세·무역장벽, 철강 가격을 '지역 상품'으로 만든다
철강은 원래 운송비와 품질 특성 때문에 '지역재' 성격이 강한 상품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기에 미·중 갈등과 보호무역 기조까지 겹치며 국가별 가격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2018년부터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해 왔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올해 들어 기존 체제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중국산을 겨냥한 고율 관세 재부과, 우방국을 포함한 전 세계 철강·알루미늄 수입품에 대한 관세 인상 방안이 잇달아 거론되면서 미국 내 철강 가격은 사실상 '관세 프리미엄'을 얹은 구조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유럽연합(EU)은 다른 방식의 장벽을 세우고 있다. CBAM(탄소국경조정제도)은 2023년 10월부터 올해 말까지 전환기간을 거쳐 내년부터 철강·알루미늄·시멘트 등 탄소집약 품목에 대해 본격적으로 탄소 비용을 부과할 예정이다. 이 경우 같은 철강 제품이라도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량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이중 가격 구조'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미국·EU에 비해 관세·세이프가드가 약한 편이었지만, 현대제철이 작년 중국산 후판과 중국·일본산 열연강판에 대해 잇따라 반덤핑 제소에 나서면서 방어막을 키우고 있다. 올 2월에는 중국산 후판에 대해 27.91~38.02%의 잠정 덤핑방지관세가 예비 판정된 상태다.
각국 관세·비관세 장벽이 동시에 강화되면서, 미국·EU처럼 높은 방어막을 가진 지역 내수 가격은 프리미엄을, 상대적으로 장벽이 약한 한국·동아시아는 저가 수입공세와 내수 부진의 이중고를 겪는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다.
■ 탈탄소는 '비용'이자 '진입장벽'…뒤처지면 시장 퇴출
철강은 대표적인 탄소 다배출 산업이다. 파리협정 이후 각국의 탄소 감축 규제가 강화되면서 철강사는 더 이상 값싼 철강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게 됐다.
EU CBAM과 미국 CCA는 탄소를 가격에 반영하는 제도다. CBAM은 2023년 10월부터 올해 말까지 배출량 보고를 의무화하고 내년부터는 EU로 수출하는 철강·알루미늄 등에 대해 CBAM 인증서(사실상 탄소 비용)를 구매하도록 설계돼 있다. CCA 역시 철강을 포함한 12개 품목에 탄소배출 톤당 비용을 부과한 뒤, 2027년 이후 자동차·전자 등 완제품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이런 규제를 감당하기 위해 글로벌 철강사들은 전기로(EAF), 수소환원제철, 직접환원철(DRI), 탄소포집·저장(CCS) 설비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고 있다. 조강 생산능력 자체를 줄이는 대신, 고로를 친환경 공정으로 바꾸거나 신규 전기로·수소 기반 제철소를 짓는 방향으로 산업 구조가 재편되는 모습이다.
통상·철강 전문가들은 "중국발 공급 과잉은 정부 주도의 감산 유도, 각국의 관세·무역장벽, 탈탄소 비용 증가가 겹치면서 점진적으로 완화되는 방향"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중국 고로 가동률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공급이 단기간에 급감하기보다는 수년간의 구조조정과 정책 유도 속에 서서히 정상화되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트럼프 2기 고율 관세와 CBAM·CCA는 한국 철강업계에 분명한 악재지만, 동시에 저부가·고탄소 생산능력을 줄이고 고부가·저탄소 체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강제 체질 개선' 요인이기도 하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필요한 막대한 투자 비용과 시간이며 이를 감당할 체력과 기술력을 가진 기업만이 다음 사이클의 승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간단 요약
• 중국, 글로벌 조강의 절반 차지하지만 내수 감소에 정점 이후 완만한 조정' 국면
• 미국 232조·트럼프 2기 고율 관세, EU CBAM·미국 CCA 등 통상·탈탄소 규제가 겹쳐 철강 가격은 지역·규제에 따라 갈라지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 탈탄소, 단순 비용이 아닌 시장 진입장벽⸱⸱⸱철강사, 저탄소 공정 갖춰야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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