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시장 원천 봉쇄에 '9%의 덫' 갇힌 K-원전⸱⸱⸱동맥경화 우려
SMR 독자 기술마저 미국 검증 종속⸱⸱⸱미래 성장 동력 상실 위기
[예결신문=백도현 기자]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합의의 세부 조항이 공개되면서 한국 원전 산업의 미래가 붕괴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체코 원전 수주를 위한 분쟁 해결이 목적이었으나 합의안에 담긴 로열티 규모와 시장 제한 조항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들이 드러난 것이다.
■ 1기당 1조 넘는 상납금과 50년 장기 로열티의 굴레⸱⸱⸱사실상 영구적 권리 헌납
24일 정치권과 업계에 따르면 이번 합의에 따라 한국은 원전 1기를 수출할 때마다 웨스팅하우스에 약 1조1500억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직접 로열티 1억7500만 달러(약 2400억원)와 물품·용역 발주 6억5000만 달러(약 9000억원)가 포함됐다. 이는 국제 특허 보호 기간인 20년의 2.5배인 50년이나 지속되며, 더구나 물가 상승률까지 반영되는 조건이다.
특히 수출 원전에 들어가는 핵연료를 100% 웨스팅하우스 제품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조항과 지급 불이행을 대비한 4억 달러(약 5600억원) 규모의 보증신용장(LC) 발급 의무가 포함돼 한국의 협상력이 사실상 무력화됐다.
한수원 측은 "분쟁 리스크를 제거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이 가져가야 할 수익이 미국으로 유출되는 구조"라며 반발하고 있다.
■ 선진 시장 진입 차단⸱⸱⸱K-원전, 수출 막혔다
수익성 악화보다 더 큰 문제는 시장 점유율의 제한이다. 이번 합의로 한국은 북미, 유럽연합(체코 제외), 영국, 일본, 우크라이나 등 핵심 선진 시장에서 독자적으로 원전을 수주할 수 없게 됐다. 한국이 공략 가능한 지역은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에 국한된다.
현재 전 세계 원전 발주 예정 물량 414기 중 한국이 수주 가능한 지역의 물량은 38기에 불과하다. 이는 전체 시장의 9% 수준으로, 그마저도 중국과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는 지역이라 실질적인 수출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국은 최근 스웨덴, 네덜란드, 폴란드 등 주요 유럽 사업에서 철수하거나 입찰을 포기하며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했다.
박시동 경제평론가는 이번 합의에 대해 "오로지 정권의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저가 수주도 모자라 한국의 원전 산업 자체를 고사시켰다"며 "그동안 엄청난 비용을 들여 연구개발을 해온 정부와 국내 기업들은 뭐가 되는 것이냐. 한수원이 비난을 면하기 위해 국내 기업들의 향후 완전한 기술 자립 가능성까지 막아버린, 다시 말해 한국이 앞으로 원전 사업을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없도록 미래를 팔아버린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SMR 검증권 헌납으로 미래 먹거리 주권 상실
차세대 원전 시장의 핵심인 소형모듈원전(SMR) 분야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국내 민간 업체들이 독자적으로 기술 개발을 완료한 SMR 분야조차 웨스팅하우스의 검증을 거쳐야 상업화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합의문에 따르면 웨스팅하우스는 한국의 SMR에 자사 기술이 포함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권한을 갖는다.
기술 침해 여부에 대한 이의 제기 시에도 검증은 미국 소재 제3기관이 담당하게 돼있어 한국 기업이 독자 기술을 보유했더라도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사실상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종속적 구조가 형성됐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이어온 기술 자립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식민적 합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박 평론가는 "이번 합의는 노예 협상을 넘어선 매국적 합의다. 국내 원전 기술은 자립에 근접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수원이 스스로 원천기술 부재를 선언한 꼴"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지지율을 의식해 성급하게 추진한 결과가 수십조 원의 혈세 탕진과 산업 경쟁력 약화로 돌아오고 있다. 반드시 국정조사를 통해 합의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현재 대통령실은 해당 합의에 대한 진상 조사를 지시했으나, 한수원은 '기밀 유지 의무'를 이유로 세부 조항의 완전 공개를 거부하고 있어 논란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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